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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기억》, SeMA 벙커, 2022.4.28-6.5.

개요

《기록하는 기억》은 서울시립미술관이 2017년부터 5년간 진행해온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 결과물인 여섯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서울 시민을 위한 미술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여의도 벙커를 시각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해석을 통해 기록하는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벙커를 지속적인 문화 생산의 장소로 전환하기 위한 영상 프로덕션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SeMA 벙커 내 역사갤러리를 기지 삼아 벙커의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권혜원, 김다움, 손광주, 신지선, 윤지원, 이정우 작가에게 영상 작품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여섯 번의 제작이 거듭되는 동안 각 작품은 과거를 닫아 두는 기록보관소의 의미를 넘어 미래를 향해 언제나 열리는 창고와도 같은 아카이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SeMA 벙커를 소재로 한 영상 아카이브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고 재현하는 것 이상의 장소 탐구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2005년 5월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공사 당시 우연히 발견된 벙커의 정체성은 일종의 정황 증거를 통해 정립되어왔습니다. 사실에 기반한 기록물이 부재한 벙커는 정치·사회적 배경을 추론하는 관점에 따라 가변적인 정체를 갖게 됩니다. 은폐되었던 기간에 벙커는 사실상 서울 시민의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실재와 공백이 겹쳐져 있는 벙커의 장소성을 기록한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는 정확한 사실과 상상이 뒤엉켜 있는 어정쩡한 공간을 재설계하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관습적 의미의 아카이브는 특정 자료의 열람을 쉽게 하는 기록화, 목록화 작업을 모두 포괄합니다. 달리 말해 산재한 정보를 축적하고, 정리, 보관, 관리하는 체계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여섯 작품은 두 방향에서 기존 아카이브 개념에 역행합니다. 우선 벙커의 모호한 실재성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기존 정보를 정리하는 체계와는 거리가 있으며, 각자의 시선과 예술 언어를 투영하면서 벙커에 대한 정보들을 오히려 분산시키는 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각 작품은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축적되면서 벙커를 예술 언어로 코딩하는 아카이브를 제안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기록하는 기억》이라는 플랫폼에서 관람객과 만나 다음 아카이브를 기다립니다. ‘기록하는 기억’은 5년간의 프로덕션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의 접근법을 묘사합니다. 벙커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는 기록과 기억 그사이를 오가며 영상으로 포획되었습니다. 나아가 기록에서 미끄러진 기억 그리고 기억이 빠뜨린 정황과도 같은 요소들은 동시대에서 다방면으로 활성화되는 대안적이고, 도전적인 역사 서술의 주요 자료이기도 합니다. 《기록하는 기억》은 작가들의 예술 실천을 시대의 서사구조에 안착하지 않고 매 순간 유연하게 적응하는 태도로 이해하고, 이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급격한 변화 속도와 압도적인 정보의 양이 지배하는 동시대 사회에서는 더 유동적인 기록일수록 더 멀리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명의 작가가 기록하는 기억과 마주한 관객들이 이 아카이브 감각을 체화하면서 미래의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먼저 상상하기를 기대합니다.

기간: 2022.4.28-6.5.
장소: SeMA 벙커